구분 | 능호 | 특징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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1기 | 건원릉(健元陵) | 고려시대의 양식을 계승 |
2기 | 영릉(英陵) | 조선시대의 고유한 묘제가 정비, 독립된 양식을 반영 |
3기 | 광릉(光陵) | 풍수사상을 더욱 강조, 간결화 된 능침공간 |
4기 | 원릉(元陵) | 능침의 위계 변화와 간소화 된 상설체제 |
5기 | 홍릉(洪陵) | 황제의 능으로 조성되어 능침의 상설체제가 변화 |
구분 | 제1기 | 제2기 | 제3기 | 제4기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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기간 |
15세기 전반 - 15세기 중반 |
15세기 후반 - 16세기 후반 |
17세기 초반 - 18세기 초반 |
18세기 중반 - 20세기 초반 |
왕릉이름 |
건원릉(1408) - 창릉(1470) |
선릉(1495) - 강릉(1567) |
목릉(1630) - 의릉(1724) |
원릉(1776) - 유릉(1926) |
특기사항 |
조선건국 1392년 |
국조오례의 간행 1474년 (성종5년) |
임진왜란1592년 (석공 피랍) |
국조상례보편1758년 (영조34년) |
주요특징 |
능원을 잔디 언덕 위에 배치하며 석마 등장 |
석물의 규모가 커지고 장엄함 |
기간에 비하여 능의 수가 가장 많고, 후반은 석물 규모가 작아짐 |
능원이 2단으로 바뀌고 다양한 양식이 혼재함 |
병풍석 |
면석에 12지신상 부조 장식, 후반에 병풍석 사라짐 |
병풍석 재도입, 우석에 영저영탁 대신 구름무늬 장식 |
난간석만 설치 |
면석에 모란문양, 우석에 연잎 장식 |
장명등 |
초반 4각형 / 후반 8각형, 사각화창 |
8각형, 4각화창 |
4각 석등 등장, 4각 화창 |
8각형, 원형화창4각형, 원형화창 |
석수 |
헌릉 석수 각4쌍, 그 외 석양 · 석호 각 2쌍 |
석양 · 석호 각 2쌍 |
석양 · 석호 각 2쌍 |
후반 황제릉에서는 석양과 석호는 사라지고 기린·코끼리·사자·해태·낙타가 등장 |
망주석 |
귀 모양에 간단한 장식과 구멍 있음 |
겹친 당초무늬의 화려한 장식에 구멍 있음 |
동물형 세호에 구멍 사라짐 |
동물형 조각이 정교해지고 구멍 없음 |
문무석인 |
초반 : 유연한 선과 둥근 환조 몸체로 고려 공민왕릉의 양식계승 후반 :크기가커지며 장엄미가 생기며 손이 노출됨 |
세부를 간략화 시킨 대담한 선과 단순화된 옷 주름 표현으로 괴량감이 강조되며 장엄한 조선능묘조각 형식 확립 |
옷 주름과 발을 벌린 자세가 정형화되었고, 무인석이 없는 왕비릉이 많으며 후반부터 키가 작아져서 장엄미가 사라짐 |
사실에 가까운 복식과 인체표현으로 다양한 양식이 공존하며, 금관조복형 문석인 등장하여 당시의 시대정신을 반영 |
구분 | 시기 | 면석장식 | 우석장식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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초기 | 태조 건원릉 ~ 태종 헌릉 | 십이지신상+운채+서기+하단에 당초문 | 영저와 영탁 |
중기 | 문종 현릉 ~ 선조 목릉 | 십이지신상+운채 | 구름 문양 |
후기 | 인조 장릉 ~ 순종 유릉 | 모란꽃 | 연꽃 혹은 연잎+난초 |
구분 | 제1형식 | 제2형식 | 제3형식 | 제4형식 | 제5형식 | 제6형식 | 제7형식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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능명 | 정릉(貞陵) | 건원릉(健元陵) | 광릉(光陵) | 영릉(英陵) | 명릉(明陵) | 융릉(隆陵) | 홍릉(洪陵) |
면수 | 4 | 8 | 8 | 8 | 4 | 8 | 4 |
화창 모양 |
□ | □ | □ | □ | □ + 8각 | 8각 | 8각 |
특징 | 고려 석등형 | 불교 석등형 | 부도형태 가미, 하단 짧음 |
전형적인 장명등 형태, 하 운족형 |
건축형 지붕에 목각 테이블 다리 |
다리에 안상형 | 가늘고 긴 형태 |
구분 | 1기 | 2기 | 3기 | 4기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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크기 | 250cm 내외 | 300cm 내외 | 180cm 내외(후반) | 250cm 내외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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신체비례 | 4.7등신(건원릉) | 3.3등신(태릉) | 3-4등신(의릉) | 5.3등신(융릉) |
신체형태 |
초반 : 유연한 선과 둥근 환조 몸체로 고려 공민왕릉의 양식을 계승 후반 :크기가커지며 장엄미가 생기며 손이 노출됨 |
세부를 간략화 시킨 대담한 선과 단순화된 옷 주름표현으로 괴량감이 강조된 주먹코로 전형적인 조선 석의 양식 |
옷 주름과 발을 벌린 자세가 정형화되었고, 무인석이 없는 왕비릉이 많으며 후반부터 키가 작아져서장엄미가 부족함 |
사실에 가까운 복식과 인체표현으로 다양한 양식이 공존하며, 금관조복형문석인 등장하고, 이는 당시의 시대정신 반영임 |
얼굴 | 장년의 얼굴 세부 표현 | 사각형의 얼굴과 주먹코로 중년의 모습이며, 목을 어깨에 파묻음 | 약간의 미소가 있음 | 미소가 뚜렷이 나타나며 사실성이 반영된 세부 표현 |
관 | 사각복두 | 사각복두 | 사각복두 | 사각복두/금관 |
분위기 | 온화하면서 장엄 | 단순하고 장엄 | 규모가 작아지면서 장엄미는 사라짐 |
장엄미보다는 사실성이 보임 |
구분 | 1기 | 2기 | 3기 | 4기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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특징 | 사실적인 조각, 부드러운 문석인에 비해 우람한 형태로 입체감이나 괴체감이 살아있음. 몸체 모서리의 자연스러운 표현 |
모서리각 각이 지도록 조각, 하체보다 상체가 비대해 짐. 목이 없어지고 커진 얼굴에 짧은 상반신으로 기괴함과 장중함이나타남. 손과 팔꿈치가 수평을 이루고 있음. 귀가 밖으로 노출 |
크기가 작아지고 정형화된 형상이 나타나기 시작. 투구의 목가리개가 위로 올린 형태가 등장. 운형(雲形)의 투구창 |
문무석인의 위계가 없어짐(단 소멸), 의복형태가 변화, 작아진 얼굴과 개성 있는 표정이 나타남. 몸의 굵기가 축소. 사실적인 옷 주름 표현, 무석인 투구의 깃털 장식이 삼지창으로 변화, 배갑에 동물상이 등장 |
구분 | 명13릉 | 청동릉 | 베트남 | 조선왕릉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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사진 | ![]()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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국가 | 중국 | 중국 | 베트남 | 한국 |
소재지 | 북경시 창평구 천수산 | 하북성 준화현 창서산 | 베트남 후에시 | 서울특별시 강남구 |
제작시기 | 1409 | 1661 | 1841~43 | 1562 |
재료 | 대리석 | 대리석 | 대리석 | 화강석 |
지료경도 | Mohs 3-4(방해석) | 3-4(방해석) | 3-4(방해석) | 7(석영) |
크기 | 약 3m | 약 3m | 약 1.6m | 약 3.2m |
형태 | 양관을 쓰고 홀을 든 직립상 | 관복을 입고 배에 손을 댐 | 관복에 홀을 들고 포를 입음 | 복두를 쓰고 홀을 든 직립상 |